적지 않은 경제 관련 서적을 여러 권 읽었지만 이번에 읽게 된 책은 정말 공부가 제대로 된 듯하다. 물론 이전에 읽었던 책들을 통해 지식이 쌓여서 이번 책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되다 보니 공부도 되고 재미를 느낀 것 같다.부록 빼고 양장으로 약 580쪽이나 되고 어려운 용어와 모르고 있던 과거 역사들을 소개도 나오다 보니 경제에 잘 모르는 입문자였더라면 읽기 힘들었을 듯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던 당시 연준의장 벤 버냉키가 쓴 책으로 아주 의미가 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이 책의 주제는 세 가지 폭넓은 경제적 변화가 어우러져 중앙은행이 자신의 목표와 한계를 보는 관점을 형성한 결과라는 것이다. 많은 내용들 중에 알아가야 할 내용들이 많기에 정리 내용이 길어질 듯싶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번스와 볼커 이야기로 시작한다. 현재의 중앙은행은 강한 독립성을 갖고 있지만 아서 번즈가 의장 시절에는 당시 닉슨 대통령에게서 독립성을 잃었다. 정부의 압박감에 독립적인 통화 정책을 시행하지 못했고 이는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는 결과로 연준을 떠난 직후인 1979년, 절반은 잘못을 자인하기 위해서, 절반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중앙은행의 고통'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심리를 제대로 억제하지 못한 탓에 인플레이션이 더 악화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원칙적으로 중앙은행이 통화공급 확대를 억제했더라면 금융시장과 경제에 '긴장'을 유발할 수는 있었겠지만, 인플레이션만큼은 '조속히' 진정시킬 수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왜 번스의 연준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번스는 "연준 자체가 미국인의 삶과 문화에 변혁을 몰고 온철학적, 정치적 흐름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번스는 정부의 완전 고용 공약을 뒷받침했던 사회적 합의야말로 연준이 독자적으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 나설 수 없도록 하는 정치적 원인이었다고 보았다. 그 과정에서는 심각하고 지속적인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번스의 강연을 듣던 청중 중에 바로 그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줄 사람이 앉아 있었으니 바로 폴 볼커였다.
이후 폴 볼커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카터 대통령에게 인플레이션을 다스리기 위해 긴축 통화 정책을 더 강력하게 펴는 일이 시급하다는 소신을 밝혔고 그 발언으로 지명이 취소되리라 생각했던 그는 다음 날 아침, 미처 잠에서 깨기도 전에 대통령으로부터 연준 의장직을 제안하는 전화를 받게 된다.
새로운 연준의장 폴 볼커는 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위해 기준 금리를 20퍼센트대로 끌어올리는 초고금리 정책을 펼치며 경제는 실업률이 10%를 넘나들 정도였으니 박살 난 상태였다. 확실히 그 효과로 집념의 폴 볼커는 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과정에서의 고통으로 많은 사람들의 시위가 있었고, 의장 사퇴를 촉구하는 문구가 새겨진 건축용 목재를 연준 앞으로 발송하기도 했다. 책의 저자 벤 버냉키는 그것은 연준 역사의 중요한 시기를 기리면서, 동시에 높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떠올려주는 기념물이었다고 말한다. 백악관은 볼커를 의장에 앉힌 후에는 대체로 그를 지지해 주었고, 이는 큰 도움이 되었다. 카터 대통령의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1980년 재선 운동에 한창이던 시기 딱 한 번뿐이었다. 이후 레이건 대통령도 볼커를 공개 비난한 일은 거의 없었고 당시 수석보좌관이던 제임스 베이커가 대통령도 있는 자리에서 볼커에게 대선 전까지는 금리를 인상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으나 이에 볼커는 닉슨과 번스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한 채 아무런 대답 없이 자리를 떴다고 한다.
카터 대통령이 볼커를 지명한 동기는 처음부터 뚜렷하지 않았지만, 인플레이션 투사로 알려진 볼커의 명성이 연준의 신뢰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아마도 가장 합리적인 설명일 것이다. 다시 말해, 연준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계속하리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인플레이션 심리도 상당히 누그러져 일자리나 생산 면에서 큰 대가 없이 빠른 기간 안에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볼커의 강연 중 당시 중앙은행 책임자와 경제학자, 나아가 정치인들이 대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잘 요약했는데, 한 가지만 설명하자면 중앙은행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단기적 정치 압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한 채 통화 정책을 운용할 자율권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볼커는 카터와 레이건의 지지를 얻은 덕분에 그의 전임자가 갖지 못했던 독립성을 누릴 수 있었다. 볼커의 후임인 앨런 그린스펀은 그 원리를 받아들여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고 볼커가 애써 얻은 인플레이션 투쟁에 대한 신뢰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통화 정책을 통해 거둔 가장 중요한 업적이다.
대호황과 대위기
최장기간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지낸 앨런 그린스펀, 1987년 8월 레이건 대통령의 지명으로 시작된다.
그린스펀의 임기 중 블랙 먼데이가 발생한다. 단 하루 만에 다우존스 지수가 23퍼센트나 폭락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린스펀은 주식시장 하락이 경제에 피해를 거의 미치지 않았고, 그 이유는 당시 주식 매입 자금이 부채와 무관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결과, 주가는 하락했으나 그 때문에 투자자들이 파산하거나 다른 금융자산이 시장에 헐값에 나오는 일은 없었다. 연준은 신속한 대응에 나서서 시장 붕괴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효과를 최소화했다. 통화 정책 대응으로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고,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과열 상태에서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에 선제 대응함으로써 경제 연착륙을 유도했다. 그는 그렇게 섬세한 통화정책으로써 금융 마술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이 주제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연이자율의 하락, 그리고 또 하나는 이후에 설명할 양적완화다.
중앙은행이 낮은 자연이자율을 걱정하는데 이유는 그것이 통화 정책을 운용하는 데 제약이 된다는 것이다. 자연이자율이 떨어지면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 자극 여력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한다. 이런 상황을 일컬어 일본형 디플레이션 함정이라고 한다. 자연이자율이 너무 낮으면 정책 금리를 운영할 여지가 없어져서 중앙은행이 전통적인 단기금리 인하에 의존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성장 둔화와 생산적인 자본 투자 기회의 제한은 다시 투자 자금에 대한 수요 부진과 자연이자율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여러 가지 가설이 있는데, 보완적 설명은 글로벌 저축과잉을 말한다. 저축 공급액이 투자 자금 수요를 넘어서기 때문에 저축 수익률이 과거에 비해 줄어든다. 세계 저축액의 증가를 주도하는 근본적인 요인은 전 세계에 걸친 소득 증가와 인구구조에 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인구증가와 소득증가로 저축 공급이 늘어나고 이는 투자 자금 수요를 넘어서면서 실질 자연이자율은 떨어진다는 말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닷컴 버블 사태 이후 아주 큰 재앙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바로 부동산 버블이다.
버블의 원인으로는 통화 완화 정책이 주택 가격을 자극했다는 일부 의견과 실질 이자율 변화라는 의견 등 여러 가지 있지만 아무래도 대중 심리가 크게 작용했지 않을까 싶다. 주택을 투자 대상으로 보는 낙관주의가 확산, 증가하는 바탕으로 주택 가격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많은 사람이 주택 가격은 어떤 일이 있어도 끊임없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는 사람들의 교류와 미디어의 힘으로 더 강화되어 갔다. 금융 혁신과 저축 과잉, 여기에 안전 자산이 부족하다는 인식도 주택 가격 버블이 형성되는 데 한몫했다. 마지막으로 금융만큼 중요한 신용, 이 신용 기준 완화는 사실상 주택 수요를 끌어올려 버블 형성을 촉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다가온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 당시엔 앨런 그린스펀의 은퇴로 후임인 벤 버냉키가 연준 의장을 맡게 되었다.
그는 일본의 디플레이션에 대해서 연구를 했었다. 일본은 1990년대 후반 버블 붕괴로 인해 양적 완화를 시행하게 되는데, 벤 버냉키도 이와 같은 QE라 부르는 양적완화 통화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미국과 일본의 양적 완화 정책은 같은데 왜 미국은 성공하고 일본은 실패했을까? 이 질문에는 신뢰가 중요하다는 답을 할 수가 있다. '포워드 가이던스', 중앙은행이 앞으로의 통화 정책 전망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통화 정책만큼이나 중요하다. 일본 중앙은행 측은 QE의 효과를 의심하는 발언을 한다든지, QE를 포함한 비상조치의 지속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다고 암시하는 등 자신의 메시지를 갉아먹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벤 버냉키는 일본의 사례를 보면서 새로운 정책 수단을 둘러싼 언행이 매우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고 이는 시장을 안심시키는 확실한 발언 (포워드 가이던스)으로 양적 완화 효과를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었다.
팬데믹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경제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후 모든 이들이 알다시피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로 경제는 다시 무너졌고 양적 완화 정책으로 다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또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다시 고금리 정책을 시행하게 됐다. 이로 인해 현재 전 세계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첫 번째 주제에서 정리한 내용의 핵심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다. 두 번째 주제에서의 핵심은 신뢰성이다. 현재 연준 의장을 맡고 있는 제롬 파월은 정부로의부터 독립성은 굳게 잘 지키고 있으나 인플레이션을 예방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high for longer 장기간 고금리 정책을 통해 물가를 잡고 노동 시장이 악화되지 않게 경제를 살리는 연착륙, 이번에는 그 신뢰성을 지키기 위해 확실히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렇게 양적 완화 정책으로 통화량이 늘어나 달러의 공신력은 떨어지게 되고, 양극화도 심해지게 됐다. 암호 화폐라 불리는 비트코인이 힘을 받기 시작했고, 실물 자산 금 값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결국 다시 인플레이션을 잡고 경제도 완화되겠지만, 앞으로 계속 이런 위기가 생기면 경기 부양을 위해 또 유동성 공급을 하게 될 것이고 이는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는, 또 같은 결과를 낳게 될 수 있다. 시장의 법칙대로 제한된 공급, 높은 수요로 인해서 비트코인이 결국 달러를 대체할 수 있을까? 당연히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없애자는 많은 의견도 있고, 나처럼 많은 이들이 이렇게 달러 화폐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저자 벤 버냉키는 이에 대해서 비트코인이 결국 화폐로서의 자리를 잡게 되더라도 비트코인 본위제에서 물가나 고용의 안정을 목표로 삼는 통화 정책은 타당성을 잃게 된다고 말하며, 이유는 중앙은행의 통화량에 대한 통제권이 없기 때문이라 말한다. 위기가 오면 돈 찍어내기로 극복한다는 의구심에 대해서도 중앙은행의 역할은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이며, 그린스펀이 했던 것처럼 위기가 오기 전에 선제적인 통화 정책 시행이 돼야 하나 중앙은행의 간부들도 사람이기에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규제들을 정부에서도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서 양적 완화로 인해 노동 시장 고용률이 올라가고 모두가 잘 살고 경제가 좋아지는 것인데, 양적 완화로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하는데 이 내용은 독자로써 납득할 수는 없다. 과연 위기는 계속해서 반복될 것인가? 이 질문에는 결국 앞으로 결과로 과정을 입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저자 벤 버냉키는 연준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분명히 실수할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제롬 파월이 말했듯이, 연준은 인격과 성실성에서는 실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앞으로도 계속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로 마친다.
경제 대위기에서 양적 완화라는 통화 정책으로 극복하고 2022년, 그는 노벨 경제학 상을 받았다. 책을 통해서 그가 어떠한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참으로 유익했다. 그가 바라보는 역대 연준의장들과 당시 역사를 설명하는 내용에 있어서도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든 생각이 과연 위기는 계속해서 반복될 것인가?인데, 이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들도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로 계속해서 그들은 개선해 나갈 것이라 보여진다. 그리고 계속해서 바뀔 것이다.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과거 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상황과 미래 전망 또한 계속 공부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답이지 않을까?
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정책 -벤 버냉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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