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대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의 생애 말기에 외적들의 침공을 제압하기 위해서 제국의 북부 전선이었던 도나우 지역으로 원정을 간 10여년에 걸친 기간 동안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는 철학 일기, 이런 글들을 읽어보면 고전과 현대의 진리는 바뀌지 않는다고 느낀다. 미국의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이 1년에 두 번은 꼭 읽는다는 책이라는데, 그럴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좋은 건 두 번, 세 번 읽고 마음에 새겨야 한다..
본성
책에서는 본성, 이성, 정신, 우주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을 성악설과 성선설로 의견이 나뉜다. 아우렐리우스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말하기를, 인간의 본성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측면은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부분"인 "이성"을 사용해서 "정신"을 통제하고, 이번에는 "정신"으로 하여금 "육신"을 통제해서 미덕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좋은 것들이나 감각을 만족시키는 이런저런 쾌락들 같은 "행복과는 무관한 것들"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아우렐리우스가 바라보는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의 혼이 쓰레기 같은 육신을 움직이는 것이라 말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육신을 '쓰레기'라고 표현하며, 육신이 지닌 한계와 부패성을 강조한다. 반면, 혼은 이러한 육신을 움직이는 고귀한 존재로 묘사한다. 이는 인간의 이성과 도덕성을 강조하는 성악설의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성악설은 인간의 본성은 악하지만, 이성을 통해 악을 극복하고 선을 추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우렐리우스 역시 육신의 악덕을 극복하고 혼의 고귀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언은 단순히 육신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갈등과 성장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그의 사상은 성악설과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보이며,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현재
다른 모든 것들은 내던져 버리고 오직 다음과 같은 몇 가지만 굳게 붙잡아라. 너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오직 현재라는 아주 짧은 순간만을 살아갈 뿐이고, 다른 모든 시간은 지나간 과거이거나, 네가 살게 될지조차 불확실한 미래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너의 인생은 극히 짧고, 네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 조각도 아주 작다.
아우렐리우스는 현재를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많이 던진다. 책을 읽으며 얼마나 밑줄을 그어 댔는지.. 주옥같은 말들이 많다. 결국 진리는 고전과 현대라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아우렐리우스는 자기 삶의 대한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라는 메시지도 던진다. 쉽게 말해,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기대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라는 의미이다. 아우렐리우스의 말은 다음과 같다.
오, 나의 정신이여, 너는 네 자신을 학대하고 또 학대하고 있구나. 그것은 네 자신을 존귀하게 할 기회를 스스로 없애 버리는 것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너의 인생도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너는 네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마치 너의 행복이 달려 있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너의 행복을 찾고 있구나.
이 땅에서 네게 주어진 시간은 엄격하게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네가 그 시간을 활용해서 네 정신을 뒤덮고 있는 안개를 걷어내어 청명하게 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지나가 버리고 네 자신도 죽어 없어져서, 다시는 그런 기회가 네게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면 불안하고 초조해지며, 진정한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 외부의 평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자신에게 집중하고 성장할 수 있다. 나 또한 남들의 시선을 보기 바빴었고 거기서 벗어나고자 선택했던 것은 소셜미디어와의 단절이었다. 나만의 목표, 꿈을 가지고 꿈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서 만나보고 소통하며, 인사이트를 얻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지도록 노력했다. 미래의 이상적인 삶은 바라고 있지만,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기에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안은 언제나 나의 내면에 있는 생각이나 판단에서 생겨난다. 내 자신이 이미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어 왔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라. 우주는 변화이고, 삶은 의견이다. 네 눈 앞에 있는 현재라는 순간에 집중하라.
나는 어떤 행위에서 기쁨을 얻는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 스스로 생각을 하고 질문을 던지게 만들어준다. 이번 명상록을 통해서 인생에 대한 진리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고 아우렐리우스가 말하는 진리가 너무 당연하다는 것이다 보니, 평상시에 잊고 있다가 책을 통해서 다시 상기시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에서는 정말 수많은 진리의 말을 볼 수 있는데, 그 중 주제에 맞는 글 하나를 소개 해보려고 한다.
네가 바른 원리들을 따라 행하는 데 늘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렇게 하는 데 염증을 느끼거나 의기소침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된다. 실패했을 때에는 계속 반복해서 시도하고, 네가 인간으로서 바르게 살아가려고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며, 네가 무수히 실패하는데도 끝까지 추구하고 있는 그 길을 사랑하라. 철학은 너의 본성이 원하는 것들만을 원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물론, 너는 너의 본성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을 하는 것이 네게 즐거움과 쾌락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리라. 그것이 우리가 쾌락이라는 덫에 걸리게 되는 이유가 아니겠느냐? 하지만 고매함, 자유롭고 독립적인 정신, 소박함 자애롭고 사려깊은 마음, 경건함 속에 너를 더 즐겁게 해 주는 것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잘 생각해 보아라. 우리에게 지혜가 있으면, 일들을 순리를 따라 확실하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고 알 수 있다는 것을 네가 생각해 본다면, 무엇이 지혜보다 더 즐거운 것일 수 있겠는가.
과거의 나는 유흥적인 것들에서 얻는 즐거움만을 추구했다. 아우렐리우스가 말하는 쾌락이라는 덫에 걸리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쉽게 얻는 것은 나이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감사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 다른 즐거움을 포기하면서 고독하고 인내를 해야만 하는 지금 이 시간으로 성장하고 그 성장 속에서 얻는 이 기쁨, 누군가 보면 답답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 또한 그렇게 보고 있을 것이고, 잠시 긴장을 푸는 순간에 나 조차도 그렇다. 하지만 잊지 말고자 계속 이성을 통해 객관적인 판단으로 좋은 생각을 낳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내가 성자했을 때, 기쁨을 얻는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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